ㅇ. 산행 일자: 2023년 1월 9일(둘째 월요일)
ㅇ. 산행지: 영천 용남산(212.2m)- 높은재(165.1m), 진등재(227.0m), 화영산(185.1m),
성재(187.2m)
ㅇ. 날씨: 오전 흐린 후 오후 맑음
ㅇ. 참석자: 김명근, 이종서, 송형익 이상 3명
ㅇ. 산행시간: 오전 10시 15분~ 오후 3시 25분(차량 이동 시간 포함: 5시간 10분
순 산행시간: 3시간 40분)
ㅇ. 산행코스: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502-1' 창고- 영천 고경면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장 내
용남산 정상-큰고개 정상- 현장 사무소- 출발지점(4.63Km.1시간 20분)-
차량 이동- '고경면 대성리 산 25-1'- 진등재 정상 왕복(2.39Km. 1시간)-
차량 이동- '고경면 대성리 65' - 화영산 정상- 출발 지점(1.66Km. 35분)-
차량 이동- '고경면 대의리 264' 평지마을 삼거리- 능선분기점- 성재 정상 왕복-
버들골 과수농원- 평지마을(2.23Km.45분) 총 산행거리: 10.91Km
ㅇ. 산행지도
◐. 산 위치도
◐. 용남산(212.2m)-높은재(165.1m.)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용남산(212.2m)과 같은 능선상의 높은재(165.1m) 등 두 개의
미답산 산행기종점으로 잡은 '고경면 용전리 502-1' 대형 창고 앞에 주차를 하고 주변
지형을 둘러보노라니, 남쪽 멀리로 용남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게 보입니다만, 주변
일대가 온통 누런 흙을 드러낸 채 파헤쳐져 있는 게 무언가 좀 이상합니다. 예상 루트대로
지도상의 '개밭골지'로 들어가는 포장 농로를 따라 들어가니~~~
전면으로 골짜기 입구를 비롯해서 산자락을 따라 길게 가림막을 설치해서 출입을
차단해 놓은 게 보이고, 그 뒤로는 무슨 공단을 조성하는지 야산을 모조리 까뭉개어
부지 조성 작업을 하느라 중장비도 보이고 덤프트럭도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할 수도 없고 하여 들머리를 찾느라 왔다 갔다
하느라 10여분 이상이나 시간을 허비한 후 결국은 처음 위치로 되돌아와서는 아래
사진의 노란 선처럼 진행한 끝에~~~
가림막을 피해서 어렵사리 좌측 능선 끝자락으로 올라설 수 있었고~~~
첫 번째 야트막한 무명봉으로 올라서니 그제야 드넓게 조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공단 부지 전경(全景)이 펼쳐지며 저만치 용남산이 솟아있는 게 보이네요. 능선이고 길이고
까뭉개져 버려 있을 리가 없어, 그냥 용남산을 가늠한 채 공사 차량용 임시 도로와 거친
공사 현장을 마구잡이로 가로질러 간 끝에~~~
가까스로 용남산 바로 아래 지점에 도착하고, 전면 가파른 산자락으로 올라붙어 한동안
치고 오르니~~~
'의인 경주 이 씨' 묘 1기가 자리 잡고 있는 용남산 고스락(212.2m)에 올라서네요. 일단
인증샷부터 하고~~~
주변 일대를 둘러보노라니 공단 부지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산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규모가 47만 평이나 되는 '영천 고경일반산업단지' 조성을 하고
있는 현장이네요.
높은재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역시 모두 까뭉개져서 평지로 변모해 있고, 지도상의
높은재 봉우리는 겨우 형체만 남아 있는 게 멀리 건너다 보입니다. 역시나 높은재를
가늠해서 내려선 뒤 거친 평탄부를 가로질러 접근을 하노라니~~~
발파공이 여기저기 뚫려있고 가는다란 발파 점화용인 듯한 전선들이 깔려있는 암반
지대도 나타나고 하는데, 그렇다고 뒤돌아서기도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통과하노라니 뒤통수가 당기는 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쫄아드네요.
가까스로 역시나 발파 예정지인 듯 발파공이 여기저기 뚫려있고 정상부가 얼마쯤
깎여 나가 버린 듯한 큰고개 봉(165.1m)에 올라섭니다. 인증샷을 하고 서둘러 맞은
편으로 내려가노라니, 아래쪽 공사 현장에 차량이 한 대 보이고 직원 두 명이 손짓을
하며 빨리 내려오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게 보이네요. 아마도 공사 현장의 중장비
기사나 덤프트럭 기사가 공사 현장을 가로질러가는 우리 일행들을 발견하고 현장
사무실로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주의도 몇 마디 듣고 사죄도 했지만 덕분에 편안하게 차량에 탑승해서 현장사무소
입구까지 이동하게 됩니다. 이곳 입구에 걸려있는 간판과 주위에 세워놓은 안내판을
보고서야 이 현장이 '영천 고경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현장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네요.
포장 농로를 따라 출발 지점으로 회귀하노라니 저절로 쓴웃음이 나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참 무모한 행동을 헸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그깟 산봉우리 답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목숨까지 담보로 내걸다니~~~
우측 공사 현장 가림막 너머로 멀리 용남산이 건너다 보입니다.
잠시 후 출발 지점에 도착하며, 4.63Km에 1시간 20여 분이 소요된 '용남산-높은 재' 답사
산행을 마칩니다. 아니 '영천 고경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 순시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네요.
◐. 진등재(227.0m)
일행 중 이종서 산우의 문중산에 있는 진등재(227.0m) 답사를 위해 산행기점으로
잡은 상주-영천 고속도로변의 '고경면 대성리 산 25-1' 포장도로 끝지점에 도착해서는
계속해서 계곡 안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들어가며 산행에 들어갑니다
몇 발짝 안 들어가서 나오는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꺾어 드니~~~
잠시 후 무명 묘역으로 올라서며 서너 발 짝 더 오르니 능선상으로 올라서게 되고, 좌측
어디쯤에선가 올라오는 대체로 뚜렷한 우측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얼마 안 올라가서 이종서 산우의 증조부님 묘소로 올라섭니다. 미리 준비해 온 소주와
안주를 상석에 올려놓고 친구와 함께 약식 성묘를 하고 음복을 한 뒤~~~
계속해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면~~~
'유인 월성 김 씨' 묵묘 1기가 자리 잡고 있고, 눈에 익은 '맑음' 표지기가 하나 걸려있는
진등재 고스락(gps 고도. 227.0m)에 올라섭니다. 오늘은 '~재' 자가 붙은 산봉우리를
3개나 답사하게 되네요. 인증샷을 한 후~~~
올라왔던 코스 그대로 되짚어 내려가서~~~
출발 지점에 도착하니 2.39Km에 성묘 시간까지 포함해서 왕복 55분 여 가 소요
되었네요.
◐. 화영산(185.1m)
진등재와 같은 능선상에 있으나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화영산을 답사하기 위해 대죽골
마을 쪽으로 운행해 나가다가, 화영산 정상 바로 아래 산자락의 수랫길변에 주차를 하고
화영산 답사 산행에 들어갑니다
진행 방향으로 잠시 이동하면 우측 산차락으로 컨테이너 창고가 보이며 임도 들머리가
나오고, 우측 임도 따라 몇 발짝 오르면 묵밭과 연결이 되며 잡초로 인해 길이 잘 안 보여
우리 일행들은 맞은편 길 없는 산사면을 잠시 개척해 올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좌측으로
돌아 오르는 산길이 있는 듯하네요.
어쨌거나 잠시 후 좌측으로 돌아 올라오는 너른 길을 만나게 되고, 우측 길을 따라
오르면~~~
얼마 안 올라가서 관리가 잘된 '경주 김 씨' 묘역으로 올라서네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잠시 후 뚜렷한 주능선길과 합류하고 건너편으로 몇 발짝 더 오르면~~~
'경주 김 씨'묘역에서 6분여 만에 잡초 속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화양산 고스락
(185.1m)에 올라섭니다. 인증샷을 하고는 ~~~
되 내려가기가 무엇해서 좌측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하산길로 접어들면~~~
잠시 후 능선 분기봉으로 오르게 되는데 분기봉 올라서기 직전 우측으로 갈림길이 보여
이쪽으로 꺾어 출발 지점을 가늠해서 내려가노라니~~~
얼마 안 내려가서 계곡 수렛길로 내려서네요. 우측 길을 따라 진행하면~~~
잠시 후 출발 지점에 도착하며 화양산 답사 산행을 마치고, 마지막 답사 예정인 성재로
이동합니다.
◐. 성재(187.2m)
'고경면 대의리 264' 평지마을 내 '거곡로 214-49' 농가 앞 삼거리에 주차를 하고는~~~
좌측 수렛길을 따라 들어가며 성재 답사 산행에 들어갑니다. 한차례 돌아 들어가면~~~
산자락으로 오르는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임도를 따라 오르노라면~~~
잠시 후 규모가 제법 큰 천막 하우스 형태의 창고가 있는 능선상으로 올라서네요. 계속해서
억새 숲 사이로 이어지는 산판길을 따라 오르노라면~~~
잠시 후 산판길은 능선을 가로질러 반대 편으로 넘어가는 듯해서, 산판길을 버리고
우측 다소 희미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몇 발짝 안 올라가서 관리가 잘 된 '성산 이 씨' 쌍분 묘역이 나오고~~~
잠시 후 나오는 분기봉은 우측으로 우회길이 보여 이쪽으로 진행해서 다시 능선길로
올라붙어 진행하다가~~~
무명묘를 지나며 제법 가팔라지는 능선을 한차례 바짝 치고 오르니~~~
군부대 철책펜스와 감시초소가 있는 성재 정상부(187.2m)로 올라서네요. 정상은 초소가
서있는 지점이나 들어갈 수가 없으니 철책 펜스에 표지기를 걸고 인증샷을 한 뒤~~~
바로 올라왔던 코스 그대로 되 내려가다가~~~
능선 분기 지점에서 좌측 능선길을 따라 진행을 하니~~~
몇 발짝 안 내려가서 역시나 관리가 잘 된 '성산 이 씨' 묘역이 잇달아 나오더니~~~
잠시 후 계곡에 조성된 과수 농원으로 내려서며 전면이 훤히 트입니다.
산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한 듯한 펜스와 철책문을 통과해서~~~
계곡 수렛길과 접속한 뒤 우측 수렛길을 따라 나가면~~~
6분여 만에 출발 지점에 도착하며 성재 답사 산행을 마칩니다. 시간 여유도 있는지라
귀갓길에 이종서 산우의 선조인 이언기의 처야당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 처야당(處野堂)
처야당(處野堂)은 조선 중종조의 선비로 효행이 두터웠고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세인의
숭앙을 받았던 처야당 이언기(李彦沂)가 영천시 전촌동(현 도동)에 건립한 정자로 뒤에
고경면(古鏡面) 대의리(大儀里) 거곡(巨谷) 마을로 이건(移建)되었습니다.
이언기(李彦沂)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원(聖原) 호는 처야당(處野堂). 고조는 사간원
좌헌납 지제교(司諫院左獻納知製敎) 이사징(李士澄)이며, 증조부는 언양 현감(彦陽縣監)
이극강(李克剛), 조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이석보(李錫保)입니다. 부친은 참봉(參奉)
이방(李芳)으로 성산이 씨 영천 입향조이며, 모친은 의인(宜人) 창녕 성씨(昌寧 成氏)로
진사(進士) 성영준(成永俊)의 딸입니다. 부인은 의인(宜人) 진양 최 씨(晋陽 崔氏)로 생원
최운수(崔雲水)의 딸이며, 슬하에 아들 이억령(李億齡)이 있습니다.
처야당(處野堂) 이언기(李彦沂) 선생은 연산군 5년(1499년)에 출생, 1575년에 타계하셨는데,
중종 조에 임금에게 경서를 강연하는 자리에서 경전을 강론하고 임금의 뜻을 전하는
인재였으나 국론이 엇갈리고 조정이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을 보고 물러나 시골에 묻혀
살았습니다. 그 후 지방의 훌륭한 선비로 천거되어 영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여생을 야인으로 보내셨습니다.
성산이 씨 재실 봉성재
처야당 기문(處野堂 記文)
영천에서 남쪽으로 몇 리쯤 떨어진 곳에 한 들판이 있으니, 이름 하여 주소평야(周召平野)
이다. 들판이 주소라 한 것이 누구로부터 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마도 초야에 묻혀있던
신하가 주공(周公) 소공(召公)등 서주(西周)의 성스러운 교화를 생각하여, 그렇게 이름을
정한 것인지 진실로 우연히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들판은 넓고 평평
하여 비옥하고 풍요로워서 사람들이 산지가 오래되었고, 나도 또한 이 들판에서 농사를
짓고 이 들에서 즐기며, 이 들에서 생애를 마쳐서 한 야부(野夫)가 되는데 그칠 뿐이다.
그리하여 계사년(1533)에 내가 사는 집 한쪽에 조그마한 집 하나를 짓고, 처야당이라는
현판을 걸으니 이름을 붙인 자는 누구인가? 바로 주인 스스로이다. 내가 세상 사람들의
당호(堂號)를 살펴보니, 간혹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그 이름을 산림에 의탁하거나,
산림에 살고 있으면서도 경세제민(經世濟民)에 의탁한 자가 있으니, 이는 남의 집에 이름
함과 다름이 없으니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나의 집에 땅으로 인하여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반성하려 하나니, 내가 어찌 아름다운 이름을
빌어서 남의 이목을 끌려고 하겠는가? 나의 행동이 야(野-세련되지 못함)하고, 언어가
야(野-민첩하지 못함)하고, 의식이 야(野-호화롭지 못함)하고 거처가 야(野-부유롭지 못함)
하니, 야(野)로서 당호(堂號)를 지음이 또한 마땅하지 아니한가?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야인(野人)이 없으면 군자를 받들 수 없다.」 고 하였으니, 나에게는 좋지 않으나마 몇
이랑의 밭이 있어서 그 가운데서 힘써 일하여서 위로는 군자(君子)를 받들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분수에 꼭 합당한 일이니 다시금 무엇을 구하겠는가? 이 집은
뛰어난 경치나 바위와 골짜기 같은 운치는 없으나 야화(野花)는 흐드러지도록 곱게 피어서,
그윽한 향기가 사람을 덮치고 야죽(野竹)은 푸르게 자라서 성근 그림자가 뜰 가득히 깔린다.
어디 그뿐인가? 천년을 흐르는 야수(野水)는 좌우로 철철 급한 여울을 이루고 한 조각
야운(野雲)이 조석으로 모이니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이요, 주인의 기이한 구경거리
이니, 모두가 가히 즐길 만하구나. 아! 슬프다, 하(夏), 은(殷), 주(周) 삼대 이후로 문(文)이
질(質)을 앞질러서 선비들도 오히려 외화(外華)만을 숭상하여 명리(名利)만을 구하기에
급급하니 독실한 행실과 중후(重厚) 한 말이 씻은 듯이 없어졌구나. 내가 홀로 문(文)이
지나쳐서 그 중용(中庸)을 잃기보다 야(野)하나마 졸렬한 것을 지키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여 처야당으로 이름을 정하고, 내 본마음을 지키려 하노라.
처야당 주옹(主翁)이 기록함
성산이 씨 휘 언기의 유정인 처야당
처야당 정문인 무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