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대구광역시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아름마을 문화유적 탐방 및 칠곡 남산(58.0m)~ 깐치산(122.6m) 산행

산여울 2023. 11. 23. 18:30

ㅇ. 산행일자: 2023년 11월 23일(넷째 목요일)

ㅇ. 산행지: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문화유적 탐방 및 칠곡 남산(58.0m)~

                  깐치산(122.6m) 산행

ㅇ. 날씨: 약간 흐림

ㅇ. 참석자: 단독 답사산행

ㅇ. 소요시간: 오전 8시 55분~ 오후 12시 35분(문화유적 탐방 및 도로이동시간 포함: 3시간 40분)

 

ㅇ. 진행코스: 대구 달성군 '묘1리.파회' 정류장(강정보녹색길 합류)- 달성 삼가헌, 낙빈서원-

                      산림욕장- 묘골아름마을(충효당, 도곡재, 태고정, 육신사)- 능선오거리(육각정

                      쉼터)- 금남 2리 마을회관- 칠곡군립노인요양병원- 장미노인요양원 옆 남산

                      들머리- 남산 정상- 낙산2리마을회관(보병마을)- '한티가는길 1구간' 합류 삼거리-

                      '한티가는길 1구간' 이탈 안부 삼거리- 깐치산 정상- 보병고개- 기곡 1리 마을회관

                       (기곡종점)    총 걸은 거리: 문화유적 탐방 및 도로이동 거리 포함 9.42Km

 

ㅇ. 교통편: 갈 때→ 정평역~ 문양역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묘1리.파회정류장 성서 2번 버스

                   올 때→ 기곡종점~ 문양역  성서 2번 버스, 문양역~ 정평역  도시철도 2호선

 

ㅇ. 산행지도

깐치산.jpg
1.12MB

 

     금일 역시 막간을 이용해서 칠곡 지역에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미답산들 중 왜관읍의 남산

     (58.0m)과 지천면의 깐치산(122,6m)을 답사하기로 하는데, 두 산만 답사하기엔 코스가

     너무 짧아, 인근인 대구 달성군 하빈면에 있는 '묘골마을'의 각종 문화유적을 연계해서

     답사하기로 하고 집을 나섭니다. 도시철도 2호선을 이용해서 문양역에 도착한 뒤~~~

     

     잠시 문양역 주위를 둘러보고는~~~

 

     문양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대기하노로니,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목적지인 '육신사'행

     오전 8시 40분 발 '성서 2번' 버스가 정확하게 도착하네요. '육신사'행 '성서 2번' 버스가

     하루에 몇 편 없는지라 놓치면 낭패이니, 10분 전쯤에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약 20여분 만에 육신사 정류장 직전 정류장인 '묘1리.파회'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지라,

     파회마을에 있는 '달성 삼가헌'과 '낙빈서원'부터 먼저 답사한 뒤, 육신사가 있는 지척의

     '묘골마을'로 이동하기로 하고 이곳에서 하차하니~~~

 

     이정목이 길을 잘 안내하고 있는데, 이정표를 보니 이 지점이 강정보 녹색길 코스에

     포함이 되는 모양이네요.

 

     도로 건너 파회마을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노라면~~~

 

     얼마 안 들어가서 '달성 삼가헌'에 도착합니다.

 

     달성 삼가헌은 1979년 12월 31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당채의 4부로 형성되어 대문채 안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있어 앞뒤 3중으로 배치되고

     담너머에 넓은 연못과 정자가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각각 ‘ㄱ’자 변형으로 두 채가 마주하여

     튼 ‘ㅁ’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를 ‘삼가헌(三可軒)’이라 하고, 별당을 ‘하엽정(荷葉亭)’

     이라 부르며 각기 작은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의 특징은 4칸 마루 뒤편에 서고 1칸이 있고,

     그 끝에 우물과 장독대에 면한 작은 방이 있는 점과, 사랑채 정면을 통과해서 내당으로

     들어서는 안대문이 사랑마루와 사랑마당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1769년(영조 45) 박팽년(朴彭年)의 11대손으로 이조참판을 지낸 박성수(朴聖洙)가 지금의

     정침터에 살림집을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이라 명명하였다.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박성수의 아들 박광석이 1809년 안채를 새로 짓고, 1827년 사랑채를 새로 지었으며,

     1874년 박광석의 손자인 박규현이 서당으로 사용하던 별당에 누마루를 부설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사랑채 안에 걸린 '삼가헌기(三可軒記)'에 따르면, '삼가

     (三可)'란 '천하와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뜻으로 선비의 기상을 담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당시에는

     '묘동 박엽씨 가옥(竗洞朴熀氏家屋)'이라 불렀으나, 2007년 1월 29일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달성 삼가헌'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서  바로 옆 고택까지 잠시 들렀다가 나와서는

     좌측 길을 따라 돌아 들어가노라니~~~

 

     길은 계곡 쪽으로 이어지더니 잠시 후 우측으로 갈림길이 한 곳 나오네요. 바로 위에 있는

     낙빈서원을 둘러보고 되돌아 내려와서, 이 대나무 숲길을 따라 '묘골마을'로 진행하게 

     됩니다.

 

    1679년(숙종 5)에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 등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하위지(河緯地)·유응부

     (兪應孚) 등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4년

     (숙종 20)에 ‘낙빈’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가

     1982년 지방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낙빈서원을 둘러보고 직전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가서는~~~

 

     좌측 대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노라면~~~

 

     얼마 안 올라가서 산림욕장으로 조성된 능선상의 이정목 삼거리로 올라섭니다. 좌측

     능선길은 육각정을 거쳐 육신사로 가는 길이고, 우측 길은 산림욕장을 가로질러

     '묘골마을' 입구에 있는 '사육신 기념관'과 충효당을 거쳐 육신사로 가는 길입니다.

 

     우측 길을 따르면~~~

 

     잠시 후 대형  '강정보 녹색길' 안내판과 이정목이 서있는 묘골과 파회마을 경계선상의

     야트막한 고개로 내려서게 되고, 좌측 길을 따라 묘골로 이어갑니다.

 

     얼마 안 내려가서 한옥마을인 묘골마을의 충효당 앞 길로 내려서네요. 묘골을 소개하자면

     「대구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성주 방향으로 달리다 우측 67번(왜관'하빈) 지방도로 빠지면

     육신사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아담한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작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인 순천 박씨 집성촌(달성군

     하빈면) 묘골이다. 묘골이라는 이름은 독특한 지형에서 유래했다. 묘골은 밖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는 묘한 형태를 갖고 있다. 순천 박씨가 묘골에 정착하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아픔이 간직돼 있다. 박팽년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 중 한 명.

      죄인으로 몰려 일족이 화를 입을 때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 이씨는 임신 중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관비로 삼고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는 명을 내린 상태.

     이씨는 고향(하빈) 근처에서 관비 생활을 하던 중 아들을 낳았지만 여종이 낳은 딸과 바꿔

     아들의 목숨을 보존했다. 그 아이가 바로 박일산이다. 박일산은 성종 때 박팽년의 손자라는

     사실을 조정에 알리고 사면을 받은 뒤 묘골에 정착, 묘골 순천 박씨 입향조가 됐다. 묘골에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고 충절의 마을로 이름난 이유다. 」 <대구매일신문>

 

     우측 멀지 않은 곳에 사육신 기념관 안내판이 보여 그쪽으로 이동하니~~~

 

     '사육신 기념관'과  대형주차장 그리고 한옥 풍의 '묘1리 마을회관'과 육신사 버스정류장이

     나오네요. 시간여유가 많은지라 '사육신기념관'부터 먼저 관람한 뒤, 여기서부터 묘골

     상단부에 위치한  육신사까지 쭉 올라가면서 탐방하기로 합니다.

 

    사육신 기념관은 132㎡규모의 한옥 형태의 건축물로 사육신 박팽년 선생의 표준 영정을

    봉안하고 사육신과 육신사에 대한 전시 및 영상 자료 등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2010년

    개관하였다고 하였으며, (사)육신사보존회가 국비와 지방비 등 사업비 약 12억 원을 들여

    건립하였다고 하네요.

 

     삼충각(三忠閣)은 1755년(영조 31) 정려(旌閭)된 박팽년(朴彭年)과 1831년(순조 31)에

     정려 된 아들 박순(朴珣), 손자 박일산(朴一珊)의 3대에 걸친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1833년(순조 33) 경상도 관찰사 김양순[1832. 3~1833. 4]이 경상도 내 71주의

     수령들에게서 비 세우는 비용을 돕도록 하였고, 후임 관찰사인 서희순[1833. 4~1834. 12]이

     이 일에 힘써 1834년 박일산의 유허(遺墟)인 묘골에 비를 세우게 되었다.

         <대구역사문화대전>

 

     삼충각 우측 산 사면으로 '육신사 숲길'도 조성을 해놓은 게 보이네요.

 

    「 묘골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충효당이다. 인조 22년(1644) 박팽년의

     7대손인 금산군수 숭고가 별당으로 지은 것인데 충효당으로 개칭된 뒤 충'효, 법도를

     가르치는 교육 공간으로 사용됐다. 원래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으나 1995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누마루를 부설했다.  <대구매일신문>

 

     한옥카페 묘운(妙雲)

 

     도곡재는 정조 2년(1778) 대사성 박문현이 지은 건물인데 1800년대 달성십현(達城十賢)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았던 도곡 박종우가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 도곡재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구매일신문>

 

     육신사는 박팽년의 현손 박계창이 사육신을 제사 지내기 위해 지은 하빈사가 전신이다.

     하빈사는 나중에 낙빈서원이 되었으나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가 1974년

     육신사라는 이름으로 재건됐다. 정문에 해당하는 외삼문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육신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옛날 현판과 달리 한글 쓰는

     순서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씨를 쓴 것이 특징이다.  <대구매일신문>

 

     육신사 내에는 사육신을 모신 사당과 태고정, 숭절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과 박팽년의 후손인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기념 표지석,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가 있다.  <대구매일신문>

 

     보물 제554호인 태고정은 박일산이 건립한 종택의 정자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종택이

     소실되면서 함께 훼손되었으나 1614년에 중건됐다. 보통 정자에 하나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반해 태고정에는 일시루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다. 태고정의 건축학적 묘미는

     지붕에 있다. 오른쪽은 팔작지붕, 왼쪽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서까래의 윗머리를 다른

     벽에 지지시켜 달아 낸 지붕)으로 마감한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대구매일신문>

 

     육신사를 두루두루 관람하고 나오면서 문화유적 답사는 이제 모두 마치고, 남산 산행을 위해

     초입에 이정목이 서있는 우측 수렛길을 따라 오르며 이정표상의 육각정으로 이어갑니다.

 

     200m 정도 돌아 오르니~~~

 

     대구시와 칠곡군 경계 능선상의 오거리 안부로 올라서며, 바로 우측 위에 육각정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올려다 보이네요.

 

     육각정에 올라 낙동강 방면 조망을 즐기며 잠시 쉼을 한 뒤~~~

 

     돼 내려와서는 이정표상 아무런 표시가 없는 우측 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서며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에서 칠곡군 왜관읍으로 넘어갑니다.

 

     경지정리가 잘되어 쭉쭉 뻗은 농로를 따라 남산 산행기점을 가늠해서 진행하노라면~~~

 

     '금남 2리 마을회관'도 지나고~~~

 

     '칠곡군립노인요양병원'도 지나고  '칠곡시몬병원'도 잇달아 지나고 하더니~~~

 

     육각정 출발 한 지 25분여 만에 야트막한 남산 산자락 삼거리에 이르고, 좌측 길을 따라

     잠시 이동하면 '장미노인전문요양원' 철책 펜스 우측으로 열리는 남산 등산로 들머리에

     이릅니다.

 

     철책 펜스를 따라 이어지는 뚜렷한 산길을 따르노라면~~~

 

     불과 6분여 만에 서울 만산동호회 멤버이신 신상호 님의 표지기가 걸려있는 남산

     정상(58.0m)에 올라서네요. 인증샷을 하고는 ~~~

 

     맞은편 능선길을 따라 몇 발짝 내려가다가 깐치산으로 이어가기 위해 길 없는 우측

     사면으로 치고 내려가니, 얼마 안 내려가서 산자락의 '인동 장 씨' 묘역을 거쳐서~~~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금남 3길'과 합류하며, 우 전면 멀리로 깐치산 정상이 건너다

     보이네요. 좌측 도로를 따라 이동한 끝에~~~

 

     잠시 후 낙산 2리 보병마을로 접어들고~~~

 

     낙산 2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자 말자 ~~~

 

    나오는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따라 오르면~~~ 

 

     얼마 안 올라가서 야트막한 고갯마루로 올라서며 우측으로 깐치산 등산로 들머리가

     열리는데, 이 길은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한티가는길 1구간' 코스가 꺾여 오르는 길이라,

     지금부터 얼마 동안은 '한티가는길 1구간'을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잠시 오르다 보니 '한티가는길'의 부제(副題)인  '그대 어디로 가는가?' 글자판이 보이네요.

 

     널따랗게 조성을 잘해놓은 '가선대부 허공지묘'도 지나고~~~

 

     깐치산 전위봉 직전 안부 갈림길에서 뚜렷한 '한티가는길 1구간' 산길은  좌측 사면으로 

     우회해서 이어가고, 필자는 깐치산으로 이어가기 위해 이 지점에서 '한티가는길'과 헤어져

     다소 희미한 직진 능선길을 따라 오릅니다. 얼마 안 올라가서 깐치산  전위봉으로 올라서고~~~

 

     우측으로 몇 발짝 이동하면 삼각점이 설치된 오룩스맵상의 깐치산 정상(122.6m)에

     올라서네요. 인증샷을 하고는 점심시간도 되었고 하여 이곳에서 25분 여에 걸쳐 느긋하게

     중식시간을 가진 뒤~~~

 

     맞은편 대체로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하산길로 접어들면~~~

 

     지도상의 보병고개도 지나고 갈림길도 몇 곳 지나고 한 끝에~~~

 

     하빈지 수변길로 내려섭니다. 강태공들이 간간이 세월을 낚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는

     아스팔트 포장 수변길을 한동안 따르노라면~~~

 

     깐치산 정상에서 25분여 만에 '기곡 1리 회관' 앞 기곡 종점에 도착하며 오늘의 문화유적

     답사 및 산행을 모두 마칩니다.

 

     30여분 이상을 기다린 끝에 하루 배차간격이 13회 정도 된다는 '성서 2번'시내버스를 타고

     문양역으로 이동한 뒤, 도시철도 2호선으로 환승해서 일찌감치 귀갓길로 접어듭니다. 오늘은

     희한하게도 차비를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완전히 공짜로, 벌써부터 가고 싶었던 하빈면의 묘골

     마을에도 들러 육신사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들도 탐방하고, 미답산도 두어 개 답사하는 등

     아주 알찬 나들이라 기분이 엄청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