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명근 회장님 부모사랑이 영남일보에 떳습니다.

산여울 2013. 1. 8. 20:41

'1939∼2009' 결혼 70주년 김수환·이말남 부부가 말하는 '사랑과 결혼'
아들 딸 증손자 직계가족만 40명…"결혼식날 처음 얼굴봤어"
"70년 비결?…서로 믿고 양보하면서 산게 비결이면 비결이지"
지난달 29일 김수환·이말남씨 부부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아들·딸·며느리·사위·손녀가 포항의 한 한정식 식당에 모였다.

김명근 회장 일가족 상단우측2번째가 김회장 자랑스럽기

도하고부럽습니다

 

지난달 29일 김수환·이말남씨 부부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아들·딸·며느리·사위·손녀가 포항의 한 한정식 식당에 모였다.
2009년 3월29일(음력 3월3일) 포항의 한 한정식 식당, 양복과 한복으로 곱게 단장한 노부부가 등장했다. 신랑·신부 모두 10대였던 70년 전 오늘인 1939년 음력 3월3일 백년가약을 맺은 김수환(89)·이말남씨(88) 부부다. 이들 부부는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뀔 동안에도 변함없이 서로를 아껴온 셈이다. 슬하에 3남4녀를 두고 있고 손자 18명, 증손자 13명으로 직계가족이 모두 40명이다.

노부부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50~60대의 아들·딸·며느리·사위 10명과 손녀딸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별한 기념행사 없이 조촐하게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먼저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소 경직된 노부부의 표정을 풀어주기 위해 자식들은 '개구리 뒷다리 해보세요' '그럼 개구리 뒷다리 말고 김치 해보세요' 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내려 했다. 또 노부부는 자식들이 준비해 온 결혼 70주년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후' 불며 오랜만에 손도 꼭 잡았다. 촛불 속에 비친 이들의 눈에는 70년을 함께한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

#1 "우린 이렇게 만났어" 러브 스토리

열아홉 총각-열여덟 처녀

신부측 아버지 친구 중매로

처음 만난 순간 서로 반해

70년 전, 대구 토박이인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신부측 아버지 친구의 중매로 맺어졌다.

신부의 아버지는 친구를 통해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경북도청에 근무한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후 신부 오빠들에게 신랑의 됨됨이가 어떠한지 한번 찾아가서 보고 오라고 시켰다. 신랑감 대면식을 치르러 갔던 오빠들은 신랑이 인물도 좋고 성실해 보인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것으로써 혼사를 치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경북도 축산직 공무원이었던 신랑 김옹은 "직장에 있는데 웬 남자 2명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지. 후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처남이었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얼마 후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공부를 잘해 10대 후반에 공무원이 됐던 신랑과 대구시 하동(지금의 수성동)의 대지주 집안 막내딸이었던 신부는 결혼 징표로 은가락지를 하나씩 나눠 끼고는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식장은 신부의 집.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고 서로 첫눈에 반해 버렸다. 방년 18세이던 신부는 처음 본 남편이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크고 잘생겨 너무 기뻤다. 신랑의 키는 172cm정도였는데 당시로서는 큰 키에 속했다. 19세이던 신랑도 신부가 아담한 체구에 얼굴도 예뻐 흡족했다. 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천생배필이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의 결혼식 때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것. 그 이유는 바로 신랑 때문이란다. 당시 풍습으로는 신랑이 사진기사를 데리고 결혼식장이었던 신부집으로 갔어야 했는데, 신랑이 그 사실을 모르고 사진기사를 안 데리고 혼자 혼인을 치르러 갔기 때문.

#2 "성격은 정반대"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男

아내는 다정다감하고 싹싹

그래서 부부싸움도 가끔씩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렸던 부부였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신랑 김옹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말수가 매우 적고 무뚝뚝한 편이다. 반면 신부는 다정다감하고 친절하며 아주 싹싹한 편. 싹싹함이 철철 넘쳤던 아내는 좋아도 좋은 표시를 안 내고 싫어도 싫은 티를 안 내는 바위같은 남편 때문에 답답한 적이 많았다.

물론 싸우기도 했다. 70년을 함께 살면서 다툼이 없었다면 오히려 비정상 아니겠는가. 김옹은 "아이들 문제 등으로 가끔 싸웠지. 사람이 안 싸울 수는 없잖아. 그래도 70년을 살면서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일 만큼 싸운 적은 없는 것 같아. 대체로 평온하게 지낸 셈이지"라고 말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 않는가. 목이 터져라 싸워 놓고도 어느새 언제 싸웠냐는 듯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부부가 있다. 김옹 부부도 그랬다. 이들만의 화해법은 잠시동안의 묵언(默言)이었다. 김옹은 "싸우면 한동안 서로 말을 안해. 그러다 싹싹한 아내가 먼저 말을 걸지. 그러면 그게 곧 화해인거지 뭐"라고 말했다.

김옹은 감정 표현에는 인색했지만 속정이 깊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를 더 많이 챙기려고 애썼고, 아내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아내의 뜻을 대체로 존중해 주었다. 은근히 다정다감한 면도 숨어 있었다. 결혼 70주년을 축하하는 가족모임을 가지게 된 원인이 바로 김옹의 세심함 때문이었다고 며느리들이 귀띔해 줬다. 김 옹은 결혼기념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며느리들에게 "다음주가 너희 어머니랑 결혼 70주년이다"라고 슬쩍 말을 건넸다. 이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자식들끼리 정보 공유(?)를 하게 됐고 큰 딸 김영자씨(69)가 가족들끼리 점심 모임을 주최하게 됐다는 것.

#3 '격랑기' 의 신혼생활

일제말엽에는 징병당할 뻔

공무원 신분 때문에 모면

식량난에 콩깻묵으로 연명

김옹은 부부 간 사이로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지만 역사적 상황으로 힘든 적은 있었다고 말했다. 김옹은 결혼 이후 가장 곤란하고 힘들었던 시절로 일제말엽을 꼽았다. "일제 말에는 식량난이 심했어. 그때는 배급 받았으니까 물론 우리만 못 먹고 지낸 건 아니었지.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제대로 못 먹으며 힘든 시절을 보냈지. 콩깻묵(콩에서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끼) 먹으며 연명하고 그랬어. 자식들도 잘 못 먹이고."

김옹 부부는 지금 70~80대 어르신들이 모두 그러했듯 일제시대, 6·25전쟁 등 대한민국의 굵직한 역사를 모두 겪으며 살았다. 그렇다면 일제시대와 6·25전쟁 때 강제징집·징병·피란 등의 역사적 숙명으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그 시절엔 서로의 생사도 모른 채 멀리 떨어져 가슴 치는 부부들이 허다했을텐데. 그러나 다행히 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옹은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이 치열했던 시절 출장을 갔다가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강제 징병을 당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경북도청에 연락해 강제징집을 면했다. 당시 공무원은 강제징집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는 나이 덕을 봤다. 30세가 넘어 징병을 면했다. 피란도 대구에 거주하던 탓에 행운이 따랐다. 대구 시내에 포탄이 여러 발 떨어지는 바람에 당시 수성동에 있던 할머니의 친정으로 피란을 가긴 했지만, 남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을 막아내며 대구를 사수하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4 신혼때보다 더 알콩달콩한 노년

자식들 모시겠다 해도 거절

청소는 남편 요리는 아내 몫

서로 도우며 제2의 신혼생활

김옹 부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 7명 모두를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그 시절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 이는 할머니의 교육열과 부지런함으로 가능했다.

막내 아들 김희근씨(53)는 "어릴 때 어머니 재봉틀 돌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재봉틀 소리에 잠이 깼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자식들을 모두 공부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출산 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상태임에도 삯바느질을 시작했다. 45세가 될 때까지 25년간 밤낮 가리지 않고 삯바느질을 해 모은 돈으로 47세 때인 1968년 대중목욕탕을 차렸다. 이말남 할머니는 "주위 사람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어. 그 때는 대중목욕탕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목욕탕하면서 돈도 좀 벌었지. 그 돈으로 자식들도 모두 대학까지 보냈고"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현모양처를 넘어 적극적으로 가정 경제에 기여했던 다부진 어머니상이었다. 김옹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으며 묵묵히 매사에 책임을 다했던 아버지였다.

게다가 김옹 부부는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현재는 목욕탕 건물을 처분한 돈으로 생활한다고 했다. 자식들이 결혼한 이후 자식과 함께 산 적도 없단다. 지금도 경산의 한 아파트에 김옹 부부만이 거주한다. 집안 일을 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청소는 김옹, 요리는 할머니가 담당한다.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말해도 그들이 오히려 거절한다. 함께 살면 불편하단다. 할머니는 "이 사람이나 나 둘중에 한 사람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거나 중병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자식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했다.

#5 요즘 부부에게 던지는 훈수

서로 믿고 양보하고 살아야지

요즘 부부들 너무 쉽게 헤어져

믿음의 끈을 평생 놓으면 안돼

세계 최고 수준의 이혼율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7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거의 이상에 가깝다. 부부 양쪽 모두 건강하기도 해야 하고 금실도 좋아야 한다.

김옹 부부는 모두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일 집 근처의 둑길을 걷는 등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욕심 버리기 등의 절제를 실천한단다. 그럼 70년을 해로한 금실의 비결은 대체 뭘까?

이들은 '믿음과 양보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도 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상대편을 믿고 배려하며 양보했다. 김옹은 "믿음 때문이었을 거야. 아껴주고 이해해 주는 게 원인이겠지"라고 말했고, 할머니는 "남편을 법으로 여기고 살았어. 참고 따라주고 그랬지"라고 말했다. 특히 김옹은 7남매를 낳고도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하고 삯바느질을 해서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내에게 주로 양보하는 편이었다고 했다.

이 부부에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의 젊은 남녀들에게 해 줄 훈수 한마디를 들어봤다.
 "사람을 찬찬히 알아보고 결혼을 해야지. 우리는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는 시절에 태어났지만, 요즘에는 안 그렇잖아. 잘 보고 결혼을 해. 결혼을 한 뒤에는 서로 믿고 양보하고 지내야지. 헤어지는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서로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어. 믿음의 끈을 놓으면 안돼."
 

 
산대장 09.04.04. 10:44
화랑산악회 김명근회장님의 부모사랑이 영남일보에 뜨서 친구가자랑스럽기도하고 부럽기도하고 여러회원들에게 귀감이될까해서 올렸습니다 김면근회장 만세
 
 
산여울 09.04.04. 10:57
감사합니다. 내세울 일도 아닌데 이렇게 카페에 까지 올려 축하를 해주니 몸둘바를~~~굽신
 
 
하회탈 09.04.04. 13:28
축하하드립니다~ 정말 부럽네요. 두 분 오래 오래 백년해로 틀림없이 하실겁니다~
 
산여울 09.04.04. 15:03
고맙소~~ 그러고 보니 나자신이 무척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양친이 아직 모두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효도를 하고 싶어도 너무나 머~언곳에 계시기에 그리워만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장미 09.04.04. 19:11
회장님!! 분명복받으신거맞습니다 두분 건강하게 오래오래 회로하시길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산여울 09.04.04. 22:43
고마워요~ 장미 총무님! 다들 이렇게 축하 해주니 더더욱 부모님께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모자 09.04.06. 19:58
명근회장 부모사랑 나도알고있지 ㅎㅎㅎ축하한다 . 아버님 어머님 오래 오래 행복하시고 장수하시길빕니다 ㅎㅎ부모님 생각이 절로나는 밤입니다
 
산여울 09.04.06. 20:47
고마우이~~~ 여러분들이 너무 과찬들 해주시니 부끄럽기만 하구려.과연 이런 칭찬 받을 일을 했는지 나스스를 한번더 되돌아 보게 되네요~~~
 
 
산이좋아 09.04.07. 22:40
만사형통 이라했던가요. 조상께서 의롭고 초지일관 바른생활의 전도사역을 잘하셨기에 이런 복된가정이 탄생하였다고 느껴지네요. 길이길이 그뜻 이어지시길, 그리고 축복된 나날이 이어지시길 바랄뿐입니다. 그저 축하한다는 말로는 넘 떨겠지요. 회장님 더 잘모셔서 오래오래 귀담이 음악처럼 되시기를 ~~~~~~~~~~~~
 
산여울 09.04.08. 16:21
부회장님 감솨! 좋은 말씀 명심해서 주위분들 한테 욕얻어 먹지 않는 자식이 되도록 노력 또 노력 하겠습니다.
 
 
대산 09.04.09. 00:13
회장님 집안에 경사났습니다,,언제대포한잔 사시지요~ 축하합니다,,
 
산여울 09.04.10. 01:04
대산아우 고마워~~~ 대포가 문젠가? 얼마전 이북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이라도 한잔 사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