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강화도 전등사 탐방 및 정족산(222.6m) 산행
ㅇ. 산행일자: 2025년 5월 3일(첫째 토요일)
ㅇ. 산행지: 인천 강화군 강화도 전등사 탐방 및 정족산(222.6m) 산행
ㅇ. 날씨: 오전 비 약간 오후 흐린 후 갬
ㅇ. 참석자: 가족여행(아들네 식구 5명, 딸네 식구 3명, 우리 부부 계 10명) 전등사 탐방 후
필자 단독 정족산 산행
ㅇ. 탐방 및 산행시간: 오후 12시 15분~ 오후 4시 30분( 전등사 탐방 및 중식시간
2시간 35분, 산행시간 1시간 40분 총 4시간 15분)
ㅇ. 산행코스: 전등사 남문 주차장- 전등사 탐방(1.88Km)- 식당이동 중식 후- 전등사
입구 이동 산행시작- 전등사 남문- 전등사- 정족산 사고- 삼랑성 북문
사거리- 정족산 정상(강화지맥 접속)- 전등사 남문- 전등사 입구 삼거리
(3.31Km) 총계: 5.19Km
ㅇ. 전등사 위치
ㅇ. 전등사 안내도

강화도로 1박 2일의 가족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첫 번째 일정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존 最古사찰이라는 '강화 전등사'부터 탐방하고 나서 맛집을 찾아 중식시간을
가진 후에, 가족들은 미리 예약해 둔 마니산 능선 끝자락의 펜션으로 출발하고, 필자는
두 번째 일정으로 전등사를 품고 있는 강화지맥상의 정족산과, 도상거리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역시나 강화지맥에 속하는 길상산을 연계한 산행을 마치고 나서
펜션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아들네 식구들과 함께 전등사 남문 주차장에 도착한
필자 부부는 시장을 보느라 조금 늦겠다는, 안양 딸네 식구들과 전등사 경내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하고는 먼저 전등사 탐방에 들어갑니다. 4일간의 연휴 첫날이자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을 이틀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많은 관람객들로 인해
전등사 입구부터 북적이네요.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 세 발 달린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가진 정족산(鼎足山)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유명하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
16년이 지난 충렬왕 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이후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2월에 전등사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등사에는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가 경내에 있다. 또, 동문 쪽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강화 삼랑성의 남문 종해루(宗海樓)
삼랑성 네 개의 문 중 문루(門樓)가 남아있는 곳은 이곳 남문이 유일합니다.
'종해루(宗海樓)"라는 현판의 뜻은 '사방의 모든 강물이 바다를 우두머리 삼아
흘러간다'라는 뜻으로, 가장 으뜸이 되는 바다를 바라보는 누각입니다. 종해루
양쪽으로는 긴 삼랑성(정족산성) 성곽이 이어집니다.
강화 삼랑성(江華 三郞城) 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鼎足山)에 있는
산성이다.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족산성(鼎足山城)
이라고도 한다. 산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강화 천도기 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3세기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둘레 약 2.3km인 삼랑성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성벽과 문루를
고쳐 쌓았고, 성내에 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史庫)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역사적 현장이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Chat GPT를 이용한 지브리스타일 AI 이미지를 딸내미한테 배워서 올려봅니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 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전등사 홈페이지>
대웅보전의 외관상 특징은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전등사 홈페이지>
대웅전 나부상(裸婦像)에 얽힌 전설은 전등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전등사 대웅전을 건축하던 도편수는 사찰 공사 중
사하촌의 주막을 자주 드나들며 그곳의 주모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미래를
함께 계획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르러 주모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주모에게 돈을 건네주며 신뢰를 쌓아갔던 도편수는 그녀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찬 도편수는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 나부상(裸婦像)을 조각했다고 한다. 이 나부상은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으로,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도편수는 사랑과 믿음을
배신한 여인의 상징으로, 그녀가 평생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미를 담아 나부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인터넷 발췌>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는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 높이 150m에 위치하며,
사고지의 보호철책 안쪽에는 주춧돌들이 놓여 있다. 또한, 성내에는 수호사찰
(守護寺刹)인 전등사가 사고를 보호해 왔으므로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강화 정족산사고지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정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성주.
전주등 네 곳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 사고로
옮겼다 다시 마니산 사고를 거쳐 현종 1년 이곳으로 옮기고 오른편에는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 관리 중 1998년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
'정사각'과'선원보각'을 다시 달았다.
전등사 경내를 관람하다가 뒤늦게 도착한 딸네 식구들과도 합류해서 함께 한동안 더
관람을 한 뒤 단체기념사진도 한컷 찍고는~~~
약 1시간 20여 분에 걸친 전등사 관람을 마치고는 현지 맛집으로 널리 알려진
'젓국갈비전골' 전문 원두막식당으로 이동합니다.
ㅇ. 정족산 산행지도
가족들과 더불어 강화인삼막걸리를 반주로 즐거운 중식시간을 가지고는
숙박지인 펜션으로 이동하던 중, 필자는 정족산~ 길상산 산행을 하기 위해
전등사 입구에서 하차해서는~~~
오전 중 전등사 탐방 시에 올라갔던 전등사 진입로를 따라 오르며 산행에 들어갑니다.
삼랑성 남문인 종해루(宗海樓)를 다시 통과해서~~~
오전 중 관람 시에 미처 들리지 못했던 '부도전'도 둘러보고~~~
'선불장'도 둘러보고는~~~
대웅보전과 ~~~
대조루 앞을 지나서~~~
다시 강화 정족산사고지 앞으로 올라선 뒤~~~
좌측 담장을 따라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코너 지점의 좌측으로 돌계단으로 된 정족산 등산로 들머리가 나오고~~~
이 돌계단을 따라 오르며 본격적인 정족산 산행에 들어가게 됩니다.
잘 발달된 등산로를 따라 오르노라면~~~
6분여 만에 이정목이 3개나 세워져 있는 삼랑성(정족산성) 북문으로 올라서며
성곽을 따라 삼랑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성돌이길'과 합류하네요. 강화 삼랑성
(정족산성) 성돌이길은 남문에서 시작하여 서문, 북문, 동문을 경유한 후, 다시
남문으로 돌아오는 2.3km의 순환 코스입니다.
(이동 경로 및 거리: 남문 700m → 서문 160 → 북서치 240m → 정상 200m →
북문 500m → 달맞이고개 → 동문 300m → 남문)
좌측 제법 가파른 성돌이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르노라면~~~
우측으로는 조망이 시원스럽게 열리고~~~
북문에서 불과 7분여 만에 '삼랑성 정상'이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정족산
정상(222.6m)으로 올라서며 강화지맥 마루금과 접속하네요. 인증숏을 하고는~~~
주변 일대의 조망을 즐기노라니 남쪽으로 다음 답사할 산 인 길상산이 멀리 조망이
되는데, 어제 용인지역 산행에 이어서 이틀 연속 산행이라 그런지 몸이 몹시 무거운 게
길상산이 엄청 멀고도 높아만 보입니다.
지금부터는 맞은편 제법 가파른 강화지맥 마루금상의 '성돌이길'을 따라 내려서며
진행하게 되는데~~~
북서치(北西雉)와 배수구(排水口)를 지나고~~~
※치(雉) : 성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부분으로 적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는
시설로, 꿩이 자기 몸을 잘 숨기고 엿보기를 잘해서 꿩치(雉) 자를 사용합니다.
삼랑성 서문도 지나~~~
한동안 성곽길을 더 오르내린 후~~~
길상산 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에 이르렀으나, 우측 성벽 아래쪽을 제대로 확인을
안 한탓인지, 분기하는 능선길을 제대로 못 보고 그냥 지나쳐 버렸네요.
되올라가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볼까? 하다가 다리도 아프고 해서 포기를 하고,
조금 더 진행하면 나오는 오룩스맵상의 강화지맥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려고 하는데~~~
막상 오룩스맵상에 표시된 강화지맥 마루금 분기지점으로 내려서서 성벽 아래를
이리저리 둘러보나 길 흔적은 전혀 보이 지를 않습니다. 마구잡이로 높은 성벽을
내려서기도 어렵거니와 길은 흔적도 안 보이는 데다 시각을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다되어가고, 몸도 피곤하고 해서 길상산 산행은 그만 포기하기로 합니다. 계속해서
성돌이길을 따라 내려가니~~~
정족산 정상에서 40여 분 만에 남문 쪽으로 내려서게 되고~~~
아들한테 픽업을 요청한 후 우측 남문을 빠져나가~~~
전등사 진입로를 따라 되짚어 내려간 끝에~~~
잠시 후 전등사 입구 삼거리에 도착하며 원점회귀 정족산 산행을 모두 마치게 되고~~~
한동안 대기하다가 근 30여분 만에 도착한 아들차에 탑승해서 가족들이 기다리는
펜션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