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녹산(59.0m) 탐방, 낙산(124.4m)답사산행, 인사동 문화의 거리- 북촌 한옥마을 탐방
ㅇ. 탐방일자: 2024년 10월 10일(둘째 목요일)
ㅇ. 탐방장소: 서울 경복궁- 녹산(59.0m) 탐방, 낙산(124.4m) 답사산행,
인사동 문화의 거리- 북촌 한옥마을 탐방
ㅇ. 날씨: 대체로 맑음 구름 약간
ㅇ. 참석자: 대구 백호 트레킹 회원님들과
ㅇ. 소요시간: 오후 12시 05분~ 오후 4시 15분( 택시이동시간 포함
총 소요시간: 4시간 10분)
ㅇ. 진행코스: 경복궁 주차장- 광화문- 경회루- 건청궁- 녹산 정상- 국립민속박물관-
박물관 정문(4.87Km)- 택시이동- 이화동벽화마을/이화달팽이길
(이화동 9-244)- 낙산성곽서길 접속(서울한양도성)- 낙산 정상- 삼선교
제1시장 정류장(2.13Km)- 택시이동- 인사동거리 입구(안국동사거리)-
인사동 문화의 거리 탐방- 안국역 2번 출구- 북촌문화센터- 북촌한옥
마을- 경복궁 주차장(4.27Km) 총 걸은 거리: 11.27Km
ㅇ. 진행코스지도
◐. 경복궁 관람, 녹산(59.0m) 탐방, 인사동 문화의 거리 및 북촌한옥마을 탐방
ㅇ. 경복궁 관람 추천코스
제반 사정으로 인하여 5월부터 9월까지 무려 5개월 간이나 휴면기를 가졌던
'백호 트레킹'이, 선선한 가을철을 맞이해서 드디어 기지개를 활짝 켜고 10월
정기트레킹에 나섭니다. 오늘 트레킹 코스는 서울 경복궁 관람을 비롯해서 인근에
있는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문화의 거리'를 탐방하는 일정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데, 전세버스가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벌써 만차가 되었는지
관광버스들이 주차장 입구 도로변에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네요.
대기시간을 이용해서 산악회에서 제공해 준 찰밥으로 버스 내에서 간단하게
중식시간을 가진 뒤, 총무님의 각자 혹은 삼삼오오 조를 지어서 자유 탐방을 한 뒤,
오후 4시 30분까지 경복궁 주차장으로 복귀하라는 공지사항을 듣고는, 필자는
오늘 일정에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낙산(124.4m)을
하나 더 답사하기로 하고, 동참을 희망하는 학교 후배와 함께 너 댓 명이 조를
지어서 먼저 경복궁 탐방에 들어갑니다. 2007년 5월 KJ 산악회를 따라 북악산
산행과 연계해서 탐방을 하고는 근 17년여 만의 방문이네요.
'경복궁교차로'에 있는 '동십자각'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 사적 제117호. 정연한 배치체계를 갖춘 궁궐로 북궐
이라고도 한다.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삼으면서 건설한 것으로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를 따 이름을 지었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임금이 거주한 기간은 길지 않다. 궁궐 내부는 정문인 광화문으로
부터 홍례문과 근정문과 향오문을 일직선 상에 배치했다. 이 사이 공간은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이다. 향오문 뒤에는 제반시설이 자리한
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겪어 이에 대한 복구가 거듭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원래 건물을 해체하는 등 본래 모습을 잃었으나 1996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일부가 복구되었으며, 이후 경복궁 복원
사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국보·보물급 건축물과 석조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다음백과>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문으로, 궁의 정문 기능을 하는 문이다.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 앞의 월대
임금이 백성을 만나고 외국 사신을 만나는 장소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됐던 곳인데,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오랜 기간 복원 작업을 거치는
산고 끝에 2023년 10월에 개방한 곳입니다.
매표소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이다. 원래는 1426년
(세종 8년)에 집현전에서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이름을 지어 올렸는데, 1867년(고종(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청나라
건륭제의 휘 홍력(弘曆)을 피휘하여 지금의 흥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정문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근정전 앞마당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있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품계석을 놓았다.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이곳에서 매일 아침 업무 보고와 회의, 경연 들이 이루어졌다.
사정전 좌우에는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은 사정전의 부속건물로
사정전에 없는 온돌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사계절로 이용이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강녕전(康寧殿)은 교태전과 함께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왕은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하들과 은밀한 정무를 보기도 하였다. 건물 앞에는 넓은 월대가 있고,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는 건물이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하였다.
강녕전 주변으로는 경성전(慶成殿), 연생전(延生殿), 응지당(膺祉堂), 연길당
(延吉堂) 등 강녕전 부속건물이 있다.
교태전(交泰殿)은 강녕전과 함께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교태전은 궁궐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왕비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중궁전이라고도 부른다.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고 내부 모습은 비슷하나, 건물 앞에 월대는 없다.
지금의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교태전 뒤로는 아미산(峨嵋山)
이라는 왕비를 위한 후원을 조성하였다.
아미산(峨嵋山)
경회루의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교태전의 뒤편에 있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을 경복궁까지 이어서 교태전에서 낳은 왕세자와 대군
들에게 백두산의 기를 주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교태전의 온돌방에서
나오는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각 굴뚝의 여섯 벽면에는 다양한
길상문으로 아름답게 꾸며 그 예술적 조형미와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경회루의 1층은 48개(둥근기둥과 네모난 기둥 각 24개)의 높은 돌기둥들만
세웠으며, 2층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이 있다.
수정전(修政殿)은 고종 대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고종 대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은 건물이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가 들어섰고, 이후 의정부(議政府)가 내각(內閣)으로
바뀌면서 내각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 초기 수정전 일대에는 세종 대에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있었다.
태원전(泰元殿)은 태조의 어진을 모셨고, 이후에는 빈전(殯殿,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발인하기 전까지 재궁(관)을 모셔둔 건물)으로 사용되었다.
태원전 주변에는 부속 건물인 문경전(文慶殿)과 공묵재(恭默齋), 영사재
(永思齋) 등 의례용 건물이 있다. 태원전은 2006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집옥재(集玉齋)는 1891년(고종 28)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와
협길당 등을 건청궁 서쪽으로 옮겨지은 것으로, 고종의 서재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를 중심으로 왼쪽에 팔우정(八隅亭),
오른쪽에 협길당(協吉堂)이 있다. 집옥재는 경복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현판이 세로형으로 되어있다.
향원정(香遠亭)은 1873년(고종 10)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
향원지)을 파서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2층의 육모지붕의 형태로 지었다.
향원정을 가기 위해 지은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에 취향교(醉香橋)라고
불렀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향원정 보수공사 때 취향교는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였다.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 안의
궁이다. 건청궁의 왕의 생활공간인 장안당(長安堂)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곤녕합(
坤寧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안당과 곤녕합은 복도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는 10년 정도 생활하였다. 200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장안당은 고종이 머물던 처소로 민가의 사랑채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이후 버려졌다가 1909년 철거되었고 2007년 복원되었다.
곤녕합은 명성황후 민 씨가 머물던 처소로 민가의 안채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에게 명성 황후 민 씨가
시해된 장소이며 시신은 곤녕합 옥호루에 잠시 안치했다가 곧 건청궁 뒤쪽
녹산에서 불태워졌다. 이곳 역시 아관파천 이후 버려졌다가 1909년 철거
되었고 2007년 복원되었다.
건청궁 입구로 들어와 앞쪽의 함광문(含光門)으로 가면 명성황후가 기거한
곤녕합(坤寧閤), 왼쪽의 초양문(初陽門)을 지나면 고종이 기거한 장안당
(長安堂)이 나옵니다.
곤녕합의 남쪽 누각인 옥호루(玉壺樓)는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장교와 날건달 무리들이 건청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당시 민비)를 시해했다. (을미사변) 옥호루의 명칭은
옥호루(玉壺樓)가 아닌 옥곤루(玉壼樓)라는 주장도 있다.
건청궁을 두루 돌아보고 인유문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동쪽으로 을미사변 때
시해된 명성황후의 시신을 불태웠다는, 나지막한 동산 수준의 녹산(鹿山)이
보여 답사해 보기로 하고~~~
출입금지 표지판과 나지막한 차단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타 넘고 들어가며 녹산 답사에 들어갑니다.
잡초와 덩굴식물들을 헤치며 잠시 오르니 ~~~
폐 초소에 '녹산'이라 표시가 되어있는, 다음지도상의 녹산 정상(59.0m)에
올라섭니다. GPS 고도를 보니 54.0m가 나오나 선답한 '만산동호회' 멤버이신
배하사님 산행기에 '59.0m'라 표기가 되어있어서 그대로 표시한 표지기를
걸만한 데가 없어서 바로 옆 담벼락 틈에 끼우고는 인증숏을 한 뒤, 맞은편으로
보이는 길 흔적을 따라 내려가니~~~
몇 발짝 안 가서 비포장 수렛길로 내려서게 되고, 우측으로 잠시 나가니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판이 걸린 차단시설을 거쳐서 향원정 앞 산책로와
합류합니다.
향원정의 아름다운 모습
향원정을 지나 잠시 더 진행하니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통하는 샛문이 보여
경복궁 탐방은 이쯤에서 마치고, 낙산 답사 산행을 하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빠져나간 뒤~~~
미답산 답사 산행이 우선인지리 박물관 관람도 포기하고~~~
박물관 내 야외에 조성된 "7080 추억의 거리"와 야외전시장만 한 바퀴
둘러보고는~~~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을 빠져나와서는 우리 조 일행들과 헤어져서, 산행을
함께 할 학교후배와 둘이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약 3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낙산공원으로 조성된 낙산 답사를 위해서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합니다.
◐. 종로구 낙산(124.4m)
낙산공원은 대학로와 동대문으로부터 이어지며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원이다. 대학로에서 낙산공원에 올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서울전망을
보고, 언덕 정상부위에 밀집한 주택과 벽화가 있는 이화동 벽화마을로 갈 수도
있다. 또 흥인지문에서 한양도성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대문 방면 코스는 성곽을
따라 한적한 도심 속 숲길을 걸을 수 있다. 한성대 입구 방면으로부터 올라가는
길은 외부 성곽 벽면 전체를 보면서 걸을 수 있어 오랜 과거로의 여행 같은 느낌을
주고, 정상에 올라 북동방향의 서울 전경을 볼 수도 있다.
낙산(125m)은 서울의 내사산의 하나로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이다. 지형이
낙타의 등처럼 생겨 낙타산이라고도 했으며, 일대에 궁중에 우유를 보급하던
왕실 목장이 있어 타락산(駝酪山)이라고도 불렸다. 60년대 이후 시민아파트와
밀집된 주택으로 낙산의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고, 서울시는 낙산복원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이 계획의 일환으로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어 2002년 7월
낙산공원으로 개원하였다. 현재 낙산공원은 서울한양도성과 푸른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낙산공원 홈페이지>
낙산공원에 인접해 있으며 낙산 산비탈에 조성된 이화동벽화마을 내
이화달팽이길(종로구이화동 9-244)에서 택시를 내린 뒤~~~
'동숭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 멀지 않은 낙산능선상의 '낙산성곽길' 쪽으로
오르노라니~~~
좌우로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을 따라 개설된 제법 길고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한동안 치고 오른 후에야~~~
자그마한 이화마루 텃밭을 거쳐서 낙산 능선상으로 축성된 '서울 한양도성'을
따라 이어지는 '낙산성곽서길'로 올라서는데, 이곳 표지판을 보니 이 길을
'이화동 하늘정원길'로 소개하고 있네요.
능선상으로 개설된 '낙산성곽서길'은 차량통행도 가능한 1차선 포장도로이며,
그 옆으로 복원된 '서울 한양도성'을 따라 산책로인 '이화마루 하늘정원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낙산 정상으로의 진행방향은 좌측이나 우측 산책로를 따라 잠시 산책을
즐기노라니~~~
파고라 쉼터도 나오고~~~
좁은 도로변으로는 상가도 조성되어 있네요.
성벽 너머로는 동대문구 일대가 시원스럽게 조망이 됩니다.
진행해 온 방향으로 되짚어가며 낙산 정상 쪽으로 향하노라니~~~
남산공원이 관광명소로 한몫을 하는지 전망 좋은 카페랑 레스토랑 등이 제법
눈에 많이 띄네요.
좌우로 펼쳐지는 서울시가지 조망을 즐기며 계속해서 낙산성곽길을 따라
오르노라니~~~
잠시 후 조망 쉼터로 조성을 해놓은 낙산 정상(124.4m)에 올라서네요. 표지기
걸고 인증숏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노라니 좌 전면 멀지 않은 곳에 경복궁에서 가까우며,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저만치 조망이 되고, 그 우측 뒤로는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멀리 조망이 됩니다.
한동안 조망을 즐기고는 '인사동 문화의 거리' 탐방을 위해 하산길로 접어
드는데, 예습을 별로 안 한 관계로 낙산 정상 바로 우측 아래 마을버스
'낙산공원' 정류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처 알지를 못해서, 그것도 인사동
반대 방향으로 쓸데없는 발품을 1Km 정도나 판 끝에 '삼선교 제2시장'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대중교통편을 잘 모르는지라 다시 택시를 이용해서
인사동으로 이동합니다. 설상가상이라고 귀가 후 사진을 PC에 다운로드하며
작동을 잘못하여 낙산 정상 인증사진부터 80여 장의 후반부 사진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이후의 '인사동 문화의 거리' 및 '북천한옥마을' 탐방 후기는 다른 선답자의
사진을 퍼와서 대충 올렸음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 인사동 거리 및 북촌한옥마을 탐방
♣. 인사동 문화의 거리
호기심 가득한 외국인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인사동. 우리나라 갤러리의
고향이자,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동네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 코스는 소소하면서
아기자기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전통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호떡, 꿀타래,
전통한과, 전통차 등의 먹거리가 많아 아이들도 좋아한다. 인사동 코스는
카메라를 꼭 챙겨가자. 트릭아트뮤지엄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연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출처: 다음백과 박물관 여행>
♣. 북촌 한옥마을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그리고 많은 사적들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의 거리 박물관이라 불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에서 ‘북촌(North Village)’이라고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있다. 사간동과 계동,
소격동 그리고 재동에는 역사의 흔적이 동네이름으로 남아 수백 년을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북촌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양반층 주거지로서 1920년대까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는데, 1930년대에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도시구조도 근대적으로 변형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의 대형 필지와 임야를 매입하여, 그 자리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현재 한옥들이 밀집되어 있는 가회동 11번지와
31번지, 삼청동 35번지, 계동 135번지의 한옥주거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 챙을 다는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북촌의 한옥은 전통적인 한옥이 갖고 있는 유형적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근대적인 도시조직에 적응하여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으로 진화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북촌 지역이 모두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던 1960년대와
달리,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들어선 다세대가구 주택 때문에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지만, 일부지역은 양호한 한옥들이 군집을 이룬 채 많이 남아 있다.
여러 채의 한옥이 지붕처마를 잇대고 벽과 벽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따뜻한 정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해 준다. 북촌
지역을 걷다 보면 이어진 처마선의 아름다운만큼이나 골목길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북촌한옥마을이 지속가능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침묵관광을
하도록 주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