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 국립공원 파계사 지구 단풍나들이 및 호산등(496.0m) 답사
ㅇ. 산행일자: 2024년 11월 11일(둘째 월요일)
ㅇ. 산행지: 팔공산 국립공원 파계사 지구, 호산등(496.0m) 답사
ㅇ. 날씨: 맑음
ㅇ. 참석자: 집사람과 함께
ㅇ. 산행시간: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3시간 30분)
ㅇ. 산행코스: 파계 4 주차장- 파계사 매표소- 파계사- 대비암- 성전암- back-
대비암주차장- 호산등 정상- 파계사 매표소- 팔공산오토캠핑장-
파계 4 주차장(6.58Km)
ㅇ. 산행지도
팔공산은 흔히 대구에 있는 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대구광역시 동구(28%)와 군위군(17%), 경북 경산시(7%) 영천시(24%),
칠곡군(24%) 등 5개 시·군·구 중에서 28%의 면적을 차지합니다. 그러다가
군위군이 대구와 병합되면서 갑자기 45%로 그 영역이 불었습니다.
1980년부터 도립공원으로 있다가 2023년 6. 23일에 국립공원 지정고시,
그해 12. 31일에 국립공원으로 탄생했습니다.
올여름 이상기온으로 인해 무더위가 엄청 오래가는 바람에 뒤늦게 찾아온
가을이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려고 하는지라, 집사람과 함께 모처럼 가을의
막바지라도 잡아볼까 하고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팔공산
도립공원'에서 '팔공산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후로는 첫 방문인 셈이네요.
공영주차장에서부터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들이 두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파계 2 주차장 바로 위의 '중 대지'에 비치는 반영(反影)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네요.
구 '팔공산 자연공원 파계탐방지원센터' 건물에 '팔공산국립공원 동부사무소
(파계센터)'라는 현판이 버젓이 걸려있는 게 보여,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했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잠시 더 오르니 우측으로 안내판과 함께 보호철책 펜스 안에 죽은 나무 밑동만
겨우 남아있는 수령 300년의 '현응대사 나무'가 나옵니다. 이 나무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전설이 서려있었는데, 조선후기 파계사를 삼창 했다는 현응대사가
출타할 때면 항상 이 나무 아래에 커다란 호랑이가 스님을 기다렸다가 태워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응대사 나무'라 부른다고 했는데, 1982년
10월 30일 보호수 2-6호로 지정 보호해 왔으나, 이후 호우와 강풍으로 수간부
전체 수형을 잃어버리고 밑동만 남게 되어 보호수로서 지정가치를 상실하여
2020년 8월 18일 지정해제 되었다고 하네요.
구 '파계사매표소' 건물은 사찰 무료입장이 시행되고 나서부터 '안내소'라는
간판으로 바꿔달고, 파계사 내 주차장을 이용하는 차량에 대해서 2,000원의
주차비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팔공산파계사 일주문
일주문 바로 우측 산자락으로 안내표지와 함께 파계사 옛길 들머리가 나오는데,
이 길은 지금의 도로를 만들기 전에 스님, 신도들이 다니던 산길로서, 파계사의
협조로 '팔공산국립공원동부사무소'에서 복원한 옛길입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옛길을 따라 내려오기로 했는데, 파계사 바로 앞에 있는
호산등(496.0m)을 답사하는 바람에 결국은 옛길을 걸어보지는 못했네요.
파계사 바로 아래 지점에 이르러 소류지인 파계지가 나오는데, 파계사의
파계(把溪)는'물줄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파계사 주변에 9군데의 물줄기가
있어서, 땅의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 저수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파계지 주변의 단풍이 들은 풍광과 반영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네요.
공중에 걸쳐져 있는 전선들이 눈에 좀 거슬립니다. 지중화했으면 좋으련만~~~
파계사 바로 앞 성전암 갈림길로 올라선 후, 파계사부터 먼저 탐방한 후
성전암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우측으로 꺾어 오르면~~~
파계사 바로 앞 주차장으로 올라섭니다.
주차장 건너편 쪽에 파계사 옛길 입구와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보이네요.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04년
(애장왕 5)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그 연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뒤 1605년(선조 38)에 계관법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을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에 현응대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다음백과>
좌측으로 돌아 오르노라니 "보물 제1850호 원통전 해체보수 공사"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는 게 보이네요.
몇 발짝 안 올라가서 진동루 앞마당으로 올라서는데~~~
진동루 맞은편엔 '영조(英祖) 임금 나무'라 불리는 25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 게 보이는데, 이 나무의 이름은 후대에 붙인 것이지만 조선 후기의 임금인
영조와 파계사의 인연을 나름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입구의 '현응 대사 나무'와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나무인데, 그만한 사연이 있다고 하네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계사와 영조의 인연은 숙종 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파계사에 주석하던 현응 대사는 왕자의 탄생을 기다렸던 숙종의 부탁을 받아
정성껏 백일기도를 올렸고 마침내 이듬해 영조가 탄생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사찰 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 임금 나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1976년 6월 원통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 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와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경내에는
2층 누각인 진동루에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
높은 기단 위에 서 있고 그 좌우에 적묵당과 설선당이 있다. 이 건물 뒤쪽으로
기영각·산령각·응향각·미타전 등이 있는데 그중 기영각은 숙종·영조·정조의
어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어필각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어필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음백과>
지금 원통암은 해체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들어가 볼 수가 없네요.
중요문화재로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을
비롯해 삼장보살도(1707)·팔각석 등이 있다. 또한 절의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는 원의대사의 부도와 비(1648), 전명대사의 부도와 비(1658), 현응대사의
부도와 비(1701)가 있다. <다음백과>
지장전과 극락전을 거쳐서 바로 성전암으로 갈 수도 있는 데, 하도 오랜만에
찾은 파계사라 잊어먹고는 주차장 직전 갈림길까지 돼 내려가서, 우측 포장 임도를
따라 성전암으로 진행합니다.
한차례 돌아 오르니 우측 계곡 위로 파계사 경내 지장전에서 극락전으로 건너가는
돌다리가 올려다 보이네요.
대비암주차장에서 올려다보이는 해일봉과 도각봉
잠시 후 대비암에 도착합니다. 대비암은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중대동 7)'에 있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파계사의
부속 암자입니다.
암자의 명칭은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상징하는 관음 도량이라는
의미에서 ‘대비암’이라 하였다고 하네요.
관세음보살입상
대비암은 1987년에 토굴과 같은 초가집이 있던 것을 승려 법준이 불사를
일으켜 2000년에 현재와 같은 선원과 대웅보전(大雄寶殿) 및 요사(寮舍)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동자승과 삼층석탑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신 대웅보전(大雄寶殿)
포대화상
지장보살좌상
대비암을 잠시 둘러보고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성전암으로 진행합니다.
성전암 1 주차장을 지나고~~~
잠시 후 다소 좁은 공간의 성전암 2 주차장으로 올라서니,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는 게 보이네요, 차량 운행은 여기까지 밖에 안되므로 이곳에서 성전암에
필요한 생활용품들이나 기타 필요한 짐들을 모노레일로 실어 나르고, 가끔씩
연세 드신 노보살님들의 이동수단으로도 쓰이는 모양입니다. 아래 사진은
주차장을 지나쳐서 역방향으로 찍은 2 주차장 사진입니다.
30여 m 정도 더 오르면 '성전암 현응선림선원' 나무 표지판이 서있는 게 보이며
시멘트 포장길도 끝나고~~~
본격적인 가파른 산길이 시작됩니다.
급경사 돌계단길과~~~
된비알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돌아 오르노라니 이곳 단풍 또한 무척 아름답네요.
오 층 석탑을 한 곳 지나~~~
제2 주차장에서 13분여 만에 성전암 불이문이 바로 위에 올려다 보이는
시멘트 계단 입구로 올라서며 우측으로 성전암이 지척에 건너다 보입니다.
'불이문' '영남제일선도량'이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기 직전에~~~
좌측으로 조망처이자 포행 하기에 좋은 작은 마당과 해우소 그리고 팔공산
주능선상의 삼갈래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연결이 되는 평탄하고 너른
산길이 보이고~~~
이어서 불이문을 거쳐서 바로 성전암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성전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인 동화사에 속하며, 파계사(把溪寺)의
부속암자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1695년(숙종 21)에 현응(玄應)이 중창하였고,
1915년에 대사 보령(保寧)이 중건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선사 성철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본격적인 수도도량으로 만들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이 성전암 터는 경상북도의 3대 참선도량 중 도리사(桃李寺) 다음으로 손꼽는
곳이며, 조사 현응이 영조의 탄생을 위하여 백일기도를 하였던 곳이다. 영조는
자신의 탄생을 감사하는 뜻에서 11세 때 자응전(慈應殿)이라는 현판을 써서
이곳으로 보냈는데, 그 편액은 지금까지 성전암 관음전 법당에 걸려 있으며,
영조 때 제작한 특이한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또, 이 암자에는 조선 때의 것으로
보이는 현응의 영정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성전암은 선원으로도 유명한데, 현대의 고승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宗正)을
역임한 성철(性澈), 1912∼1993)이 1955년부터 10년 동안 동구불출(洞口不出),
곧 한 번도 성전암 문을 나서지 않고 수행하였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성전암 제일 위쪽에 주법당인 관음전(觀音殿)이 보이네요.
왕관바위
부처님을 뵈러 주법당인 관음전(觀音殿)으로 올라가니~~~
정면으로는 영조가 11세에 써서 하사했다는 자응전(慈應殿) 친필 편액이
걸려있고~~~
좌측으로 돌아가니 정작 관음전(觀音殿)이란 편액이 옆면에 걸려있는 등
두 개의 편액이 걸린 좀 특이한 법당이네요.
집사람과 함께 잠시 예불을 드리고~ ~~
보살님의 권유로 공양간으로 가서 점심공양까지 하고는 성전암을 뒤로하고~~~
올라왔던 코스 그대로 되짚어 내려간 끝에~~~
대비암 주차장 입구에 이르러 집사람은 먼저 내려보내고, 필자는 바로 우측
산자락에 보이는 희미한 산길 흔적을 따라 오르며, 집에서 사전 예습 시 미리
봐두었던 호산등(496.0m) 답사에 들어갑니다.
출발지점인 임도의 고도가 480m 정도라 가파른 산길을 잠시 치고 오르니~~~
노송과 바위들이 어우러진 멋진 능선으로 올라서고~~~
몇 발짝 안 가서 정방형의 바위가 자리 잡고 있고 서울 만산동호회 멤버들의
표지기가 두어 개 걸려있는 호산등 정상(496.0m)에 올라서네요. 표지기 걸고
인증숏을 하는데 어쩐지 지형이 조금 낯이 익은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귀가 후 산행기를 쓰며 필자의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5년 전인 2019년 2월에
이미 답사한 산봉우리이네요. 이젠 기억력도 쇠퇴하고 체력도 엄청 달리고~~~
원래 계획은 파계사로 되돌아 내려가서 옛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으나, 먼저
내려간 집사람이 많이 기다릴 것 같아서~~~
그대로 맞은편 희미한 산길을 따라 진행한 끝에~~~
파계지 아래 계곡으로 내려서게 되고 계곡을 건너~~~
상수원 보호용 철조망을 한차례 통과 해서 바로 머리 위로 보이는 파계사
진입도로와 합류해서 공영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단풍이 무척 곱다는
'파계사 옛길'은 결국 걸어보지를 못했네요.
'현응대사 나무' 앞 삼거리에 이르러 오를 때와는 달리 우측 팔공산오토캠핑장
쪽으로 들어가는 수렛길을 따라 진행했더니~~~
잠시 후 오토캠핑장에 이르며 불타는 듯한 화려한 단풍 세계가 펼쳐집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행락객들이 단풍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네요.
이곳 오토캠핑장 부근 일대가 파계사 지구 단풍을 즐기기에는 가장 핫한 장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변 일대가 온통 새빨갛고 노랗게 물들어서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최대한 아름다운 단풍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내려간 끝에~~~
잠시 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에 둘러싸인 '파계 4 주차장'에 도착하며 오늘
단풍나들이 산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과 합류한 뒤, 기분 좋게 귀갓길로 접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