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대구광역시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路의 여행' 2코스 탐방

산여울 2025. 4. 1. 06:57

ㅇ. 일자: 2025년 3월 31일(다섯째 월요일)

ㅇ. 날씨: 맑음

ㅇ. 장소: 대구 중구 근대路의 여행 2코스 (청라언덕, 3.1 만세운동길,

               이상화. 서상돈 고택, 뽕나무 골목(두사충), 대구 구 교남 YMCA회관,

               대구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약령공원)

 

ㅇ. 참석자: 단독 투어

 

 

 

◐. 청라언덕(동산선교사주택), 3.1 만세운동길

 

 

     칠곡지역 산행을 마치고 대구시내로 들어오니 오후 3시가 채 안되었네요.

     너무 일찍 귀가하기도 그렇고 하여 도시철도 환승역인 청라언덕역에서

     하차한 뒤, 밖으로 빠져나와서는 멀지 않은 청라언덕으로 이동해서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路의 여행' 2코스 일부를 탐방하고 가기로 합니다.

 

     대구 근대골목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골목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대구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5개의 골목 관광 코스가

     있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골목투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이 길은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길이며 동산 청라언덕이 코스의

     첫 번째로 자리하고 있다. 1.64km의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다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걸리며, 골목투어를 전국 유명관광지로 만든 가장

     인기 있는 핵심 코스이다. 동산 청라언덕, 선교사주택,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제일교회,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근대

     문화체험관의 계산예가,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 두사충의 뽕나무 골목,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 한의약박물과, 조선의 과거길 영남대로, 에코한방

     웰빙체험관, 옛 대구의 번화가 종로, 화교소학교, '길다'를 사투리인 '질다'로

     표현된 진골목이 이어진다.   <위키백과>

 

     청라(靑蘿) 언덕은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위치해 있는,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는 언덕이다. 대구의 근현대사, 개신교 및 가톨릭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로, 대한민국 구석구석 100경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선교사 주택과

     대구 3.1 운동길, 사과나무, 대구제일교회 등 다양한 근대건축물이 위치해 있으며,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위키백과>

 

     20세기 초 개신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어, 집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어 (푸를 청 靑), (담쟁이 라 蘿)를 써서 ‘푸른 담쟁이

     덩굴이란 뜻의 ‘청라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달성토성이 대구의 중심

     이었을 때 동쪽에 있다 하여 '동산'으로도 불린다. <위키백과>

 

     선교사 주택

    ●. 선교박물관(스윗즈 주택): 선교사 마사 스윗즈가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는

        선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 의료박물관(챔니스 주택): 선교사 본 챔니스가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청진기와 최초의 피아노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이다.

    ●. 교육/역사박물관(블레어 주택): 선교사 블레어가 거주하던 주택으로, 현재는

        교육 및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다.

 

     은혜정원

     서울 양화진과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로, '은혜정원'이라고 불린다.

        <위키백과>

 

     사과나무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의 2세 나무로,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선교사

     존슨이 미국에서 가져온 72그루의 사과나무 중 마지막까지 남은 나무의

     후손이다. 2000년 대구광역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되었으나, 2018년에 고사

     하였다. 현재는 그 옆에 3세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위키백과>

 

     100주년 기념종탑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종탑이다. 동산의료원의 정문 및

     중문 기둥과 담장을 옮겨와 세웠으며, 실제로 종을 울릴 수 있다. <위키백과>

 

     대구제일교회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위치한 교회로, 대구 지역 최초의 교회인 대구

     제일교회를 계승하여 2002년에 완공되었다. 청라언덕에 위치해 있어

     계산오거리 부근에서 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위키백과>

 

     대구 3.1 운동길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장소로, 계단이 90개로 이루어져

     있어 '90 계단'이라고도 불린다. 당시의 현장과 생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계단 옆에 전시되어 있다.  <위키백과>

 

◐. 이상화. 서상돈 고택. 근대문화체험관(계산예가), 뽕나무(두사충) 골목,

      제일교회 역사기념관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近代文化體驗館桂山藝家)는 2012년 3월 15일 준공하여

     2012년 4월 18일 개관하였다.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다.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선도하였던 인물들의 정보를 알리기 위하여 개관하였다. 전시관, 체험실, 영상관이

     있으며, 영상관에서는 영상을 통하여 계산예가가 있는 계산동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은 다섯 개의 패널을 통하여 대한제국

     시대,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 산업화 시기 이후에 대한 시대사를 영상과

     연표로 제공하고 있다. 한옥전시실에서는 대구 근대의 모습을 사진과 엽서로

     보여 주고, 근대문화골목의 주요 건축물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축소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대구 근대 예술인들 그래픽 패널과 전자방명록도 설치되어

     있으며 사진 촬영을 한 후 전자메일로 보내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화 고택

     일제에 항거한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화(1901~1943) 시인이 거주하던

     고택이다. 이 집에서 춘향전 등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으며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

     하자는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

     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하였다. 대구시는

     그동안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했다. 이상화 고택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린 대문으로 들어서면

     고즈넉이 자리 잡은 고택이 보인다. 단층 목조주택 2동으로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행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으로 3칸은 방이며

     1칸은 출입문이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이며 팔작지붕이다. 안채는 주로

     이상화 시인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항일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이상화의 드높은 우국 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상돈 고택

     서상돈(徐相敦, 1851~1913)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이자 관료였고 민족

     독립운동가였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이 되어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와 함께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대구시는 계산동

     이상화 고택 옆에 있었던 서상돈의 생가를 복원하였고 국채보상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우는 등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에서 계산성당 쪽으로 가다 보면 이상화의 형,

     이상정의 고택과 사회운동가인 박기돈 고택, 두사충과 관련된 벽화와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상정 고택

     이상정은 '이연호'라는 가명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25년 간

     해외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이상화가 이상정 장군을

     만나려고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상정은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라고

     합니다. 형 이상정은 그림, 동생 이상화는 시! 이상정의 아내 권기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이들 부부는 해방이 될 때까지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항일운동을 했다고 하네요. 이상정 고택은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좀 색다르다고 합니다. 이곳이 대구의 중심부인데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걸린 봉하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유기농쌀 100%로 경상도의 유기농 쌀과 전라도의 물을 사용해

     영호남이 화합한 막걸리를 만들어 협동조합형식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하네요.

     탄핵 집회 가실 분들은 이곳에서 국밥을 먹고 가라고 써놓기도 했다고 하며,

     음식점 이름은  '바보 주막'입니다. 바보 노무현의 별명에서 '바보'를, 서민을

     대표하는 곳이면서 하룻밤 쉬어가기도 하고, 주린 배를 채웠던 '주막'을 따서

     '바보 주막'이라는 상호를 지었다고 합니다. <인터넷 발췌>

 

     박기돈선생 고택

     회산 박기돈은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서예가이자

     사회운동가라고 합니다. 박기돈 고택은 복원된 게 아니고, 그 집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네요.

 

      두사충과 뽕나무골목

      두사충(杜思忠)은 원래 중국 명나라 두릉(杜陵) 사람인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원군으로 왔다가 정유재란이 끝나고 조선에 귀화하여 계산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현재의 경상감영공원 자리를 자신의 집터로 잡고, ‘이 터는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라고 했다. 이곳은 400년 전 경상도를 관할하는 관창인 경상감영의

     터가 되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도청이 들어서면서 지역 최고의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의 말대로 ‘하루에 천 냥’을 버는 명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보면 풍수가로서 뛰어났던 안목을 엿볼 수 있다. 두사충이 계산동 주변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이후 그 일대를 ‘뽕나무골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뽕나무골목에는 두사충을 그린 벽화나 조각상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뽕나무

     골목은 두사충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데 뽕나무와 연관된 두사충의 사랑

     이야기가 소재로 쓰이고 있다. 두사충의 사랑 이야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두사충이 뽕나무에 올라 뽕잎을 따다가 이웃집에서 절구를 찧던 미모의

     아낙네에게 첫눈에 반하였고, 그날로 두사충은 뽕나무에 올라가 뽕잎을 따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되어 버렸다. 늘그막에 상사병이 들다시피 하여 날마다

     뽕나무에 올라 애태우는 두사충을 지켜보던 두사충의 아들은 결심을 하고

     이웃집을 방문하여 아낙네를 만나 보았다. 이웃집의 아낙네 또한 두사충을

     몰래 흠모하고 있던 터라 쉽게 중매가 되어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일교회 대구기독교 역사관] 1933년 대구제일교회에서 세 번째 예배당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2층으로 건물을 준공하였다. 1936년에 고딕양식의 종탑을

     추가적으로 세워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994년 대구제일교회에서 네 번째

     예배당을 건립하며, 세 번째 예배당은 2015년 12월부터 대구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大邱舊嶠南YMCA會館)]은 1914년 미국 북장로교

     대구선교지회의 선교사 블레어(H. E. Blair)가 건립한 건물이다. 1915년 YMCA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교남기독교청년회가 조직되어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3·1 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화합의 공간이었다.

     1938년 매각 후 없어질 위기에 처하였으나 2011년 대구시민모금운동을 펼쳐

     대구중구청과 대구기독교청년회[YMCA]가 매입하였다. 그 후 고증 작업과 보수·

     복원 공사를 거쳐 대구 지역 3·1 운동기념관 및 대구 YMCA역사관으로 조성

     되었다. 2013년 10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70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은 복원작업을 거쳐 1층은 대구 3·1 운동기념관으로 조성

     하였고, 2층은 2014년 건축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100년이 넘은 목조

     트러스를 볼 수 있도록 개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 약령공원, 약령시

 

 

 

     대구 약령시

     대구는 임진왜란 이후에 대구감영이 설치되면서 낙동강과 같은 교통의 편의성에

     힘입어 남도의 물산이 모여드는 집산지로 발돋움했다. 이에 따라 경상도를

     대표하는 서문시장을 비롯한 많은 시장들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경북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던 한약재를 사고파는 약령시였다. 대구약령시가

     개설된 것은 조선시대 효종 때의 일이었다. 개설의 이유에 대한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통시장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약령시는 한약재가 많이 생산되는 봄과 가을 2회에 걸쳐 각각

     한 달씩 장이 섰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대구약령시는 일제의 억압으로

     시장 개설이 1년에 한 차례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부흥운동을 통해 해외로까지

     약재를 판매하며 성과를 높였고 1970년대에 이른바 약전골목이라고 부르는

     상설 점포가 즐비한 거리를 만들어 침체되었던 약령시의 위세를 끌어올렸다.

     오늘날 대구약령시는 한방축제를 개최하는 한편 한의약박물관, 한약재 도매시장

     등을 통해 이 땅에서 난 한약재를 알리며 사고파는 전통시장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약령이라는 말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약재를 사고팔던

     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약령에 명령을 뜻하는 ‘령(令)’이 들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약령시의 기원과 맞물려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먼저 조선 효종 때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에서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도내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사들여

     조정에 바치기 위해 각각의 중심 도시인 대구와 전주, 원주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오늘날에는 그 근거가 희박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약령시한의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