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지역사문화관'을 관람하고 나와서는 멀지 않은 '동궁과 월지(구 안압지)'로
이동합니다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과 月池)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로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4년(문무왕 14)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가 건립된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다음백과>
궁궐 안에는 현재 중국 쓰촨 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巫山)의 12개
봉우리를 본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고, 연못을 파고서 그 안에 전설 속의
해중선산(海中仙山)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를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고서 꽃을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이 연못은
바다를 상징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중심 건물을 임해전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다음백과>
경주 동궁과 월지는 야경이 아름다운 낭만적인 신라 왕궁의 별궁 터로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야경을 감상하러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하고, '경주 월성'과 '첨성대'
쪽으로 이동합니다.
경주 월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신라의 왕성이다. 월성은
동서의 길이가 890m, 남북의 길이가 260m인 긴 반달 모양의 테뫼식 토성으로
둘레는 2,340m이다. 월성은 201년(파사 이사금 22)부터 사료에 등장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하여 교호 성토된 토성은 5세기 초반에 완공된 것으로 보고
되었다. 월성은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고려시대
이후에는 재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월성은 신라의 성장과 번영,
그리고 멸망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월성은 궁궐 터의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라 때부터 신월성, 또는
월성이라고 했다. 혹은 반달모양에 가깝다고 반월성이라고도 한다. 신라
당대에는 임금이 사는 성이라 재성(在城)이라고도 불렸다고. 어쨌든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는 반월성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
기록에 따르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제3대 유리이사금때 얼음 창고를 만들었으며 삼국
사기에서는 지증왕 11년(505) 때 얼음 창고를 만든 기록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일을 맡아보는 관청은 빙고전(氷庫典)이라 하였다. 그러나 신라 때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고려시대에도 정종, 문종 때 얼음을
나누어주는 기록이 나오지만, 그 얼음을 저장했을 석빙고 유구(遺構)는
지금까지 발견되거나 조사된 바 없다. 아래 사진의 경주 석빙고는 그 위치는
신라의 왕궁이었던 경주 월성에 있긴 하지만, 경주 석빙고 자체는 조선영조
14년(1738년)에 축조된 것으로 석빙고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나무위키>
첨성대 가는 길의 백일홍 꽃단지
경주 계림(慶州 鷄林)
사적 제19호(1963.01.21 지정)로 지정된 이 숲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
(月城)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 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회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계림 숲 내에는 지금 한창 맥문동 꽃이 만개해서 절정을 이루고 있네요.
계림숲에서 첨성대 가는 길 주변에는 드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 여성 관광객들이 꽃단지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이채롭게 보이네요.
장미꽃 단지
나무수국
꽃범의 꼬리
메리골드
샐비어꽃
맨드라미꽃
경주 첨성대(慶州瞻星臺)
국보(국보 제31호. 1962.12.20 지정).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천문대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첨성대의 구조는 기단부·
원주부·정자형 두부로 나누어진다. 첨성대 전체의 석재는 화강암으로 총석재수는
365개 내외이고, 기단부, 원주부의 외벽과 정자형 두부는 다듬어져 있으나 내벽은
다듬어져 있지 않다. 첨성대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에 최초로 나오며
〈고려사〉에도 이어진다. 〈신 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첨성대 안을 통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 있다.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견해는
1960년대까지 정설이었지만 반론도 제기된다. 구조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천문대와는 다르지만 소박한 의미의 천문관측대라고 할 수 있다. <다음백과>
첨성대에서 대릉원 가는 길에 맨발 걷기 코스인 황토. 모래길도 조성이
되어있네요.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황남동)에 위치한 옛 신라의 왕, 왕비, 왕족,
귀족 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 밀집 지역. 사적 제512호로
지정되었다. 약 150여 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미추이사금을 대릉(大陵)에 장사 지냈다.'라는 글귀에서 따 와 대릉원(大陵苑)
이라고 지었다. 대릉원이라고 하면 좁게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는
황남동 고분군 쪽을, 넓게는 바깥쪽의 금관총이나 봉황대와 같은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등을 포함한다. 일단 규모가 큼지막한 데다가 경주시 시가지에
있어 접근하기 좋고, 천마총처럼 신라 왕릉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고분도
있어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거의 필수로 찾는 곳이다. <나무위키>
경주 미추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 제13대 왕
미추이사금의 능으로 사적 제175호로 지정되었으며, 원형봉토분 중에서
규모가 큰 왕릉으로서 경주황남동고분군 가운데 하나이며, 대릉원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봉분 외에는 다른 표식물이 없었으나 근래에 석상 등
약간의 시설물이 첨가되었다. 미추왕릉은 대릉·죽장릉 등으로도 불렸다.
<다음백과>
경주 대릉원 내 포토존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들. 주로 청춘 남녀들이 대부분이네요.
대릉원 목련 포토존
대릉원 연못
천마총(天馬塚)
과거에는 '경주 155분'이라고 했지만 1973년 발굴된 후로는 '천마총'이라
불린다. 전형적인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인데, 무덤의 주인은 알 수 없다.
건축 시기는 연구성과들을 기초로 주로 6세기 초에 축조했다고 본다. <나무위키>
금관총 유구 보존시설은 실제 고분에 돔을 덧씌운 구조로 천마총 이후
경주에서 두 번째로 고분 내부 관람이 가능한 시설이랍니다. 고분의 실제
적석부와 봉토부와 함께 고분 축조 구조를 재현한 금관총의 옛 웅장한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답니다.
금관총이라고 이름 붙여진 데에는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로 꼽는 '금관'이
이 무덤에서 처음 출토되어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무덤
주변으로 금관총의 축조과정, 무덤의 구조, 출토품에 대한 설명이 있어
이해하기에 좋았습니다.
금관총을 처음 발굴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 때 고분 발굴은 고고학적 가치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금관을 찾는
것처럼 보물 찾기에 힘을 더 쏟았다고 하네요. 따라서 그 당시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할 유물 발굴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무덤도 많이 훼손되고,
기록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애초에 금관총 주변을 개발하고자
언덕인 줄 알았던 금관총을 팠는데, 유물이 나와서 그때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금관총을 둘러보고 나와서 바로 옆 '신라고분 정보센터'로 이동합니다. 경주는
삼국시대 신라의 도읍, 천년 수도로 수많은 고분이 도시 곳곳에 있는데, 누구의
것인지? 언제 생겼는지? 무엇이 있는지? 등 풀지 못한 비밀을 간직한 고분도
많은데, 천마총과 금관총을 비롯해서 신라 고분 정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시설입니다.
노서동 고분군에 위치한 '신라고분정보센터'는 작년 6월에 문을 열어
이제 막 1년이 지난 곳인데, 맞은편에 있는 금관총과 함께 통합 요금으로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신라고분정보센터'에 들어가면 출토된 금관과 신발의 모조품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의 무덤은 그 주인을 알 수 없을 경우 발굴된 부장품으로 구분을
하는데, 천마도가 발견된 곳은 천마총, 금관이 발견된 곳은 금관총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3D입체영상관이 볼만하네요.
'신라고분정보센터' 관람을 끝으로 경주 문화유적 탐방을 마침과 동시에
오늘의 일정도 모두 마치고~~~
멀지 않은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서 오후 4시 45분 발 경산행 시외버스에
탑승해서 올 때의 역순으로 기분 좋게 귀갓길로 접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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